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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수양을 통해 병을치유하는법

철리향 2009. 3. 1. 20:33

마음은 어디있는가

 

우리 전통의학은 마음의 움직임이 몸에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기뻐하고 화내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근심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마음,
즉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慾 또는 喜怒憂思悲恐驚)이 오장육부의 상태에 곧바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화를 잘 내면 간과 담이, 지나치게 즐거워하면 심장과 소장이, 근심이나 생각이 많으면 위장과 비장이, 슬픔과 우울이 지나치면 폐와 대장이, 크게 놀라거나 두려움이 많으면 신장과 방광이 약해진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말에도 깊이 배어 있는데 '애가 탄다'든지 '간이 부었다'든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든지 '염통에 털이 났다'든지 하는 표현들이 모두 그런 예다.

 

또한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은 이보다 훨씬 분명한 어조로 마음자리의 근원됨을 말하고 있다. 우주의 시초가 태극이듯이 사람의 시작도 심(心)이며, 심성이 곧 사람 자체이다.

『동의수세보원』에는 "귀와 눈과 코와 입은 사람마다 다 지혜롭고 턱과 가슴과 배꼽과 배는 사람마다 모두 어리석다. 폐와 지라와 간과 콩팥은 사람마다 모두 어질지만 머리와 어깨와 허리와 볼기는 사람마다 모두 못 생겼다"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몸을 일그러뜨리는 원인이 마음에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즉 세상 이치가 원래 선한 것이어서 사람에게도 눈과 귀와 코와 입을 통해서 그 이치를 보고 듣고 맛보기를 즐겨하는 호선지심(好善之心)이 있다. 또 인간사의 이치가 원래 악한 것이 아니므로 사람에게도 폐와 지라와 간과 콩팥의 기운을 통해 세상의 악한 일을 당연히 싫어하게 되는 오악지심(惡惡之心)이 있다.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하는 원래의 마음은 누구든 요순(堯舜)보다 못할 것이 없다. 그 마음을 행하면 사람마다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교만과 뽐냄과 제 자랑과 잘난 체하는 마음, 즉 세상을 속이려는 마음
(誣世地心)이 일어나면서 턱과 가슴과 배꼽과 배가 일그러지고, 남의 것을 빼앗고
사치하고 게으름 부리고 욕심을 내면서, 즉 사람들을 속이려는 마음( 民之心)이
일어나면서 머리와 어깨와 허리와 엉덩이가 일그러진다.

턱에는 힘을 주고 가슴과 배를 내밀고 다니며 고개를 꺼떡거리고 어깨에 폼을 잡고
허리를 휘저으며 다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아무나 요순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비록 못생기고 어리석음을 면치 못하는 존재이지만 나의 어리석음을 면하는 것은 바로 나에게 있다. 나의 머리와 어깨와 허리와 볼기는 저절로 내 몸이 되지만 못난 것을 면치 못하니 나의 못남을 면하는 것은 바로 나에게 있다."

그래서 『동의수세보원』의 결론은 한마디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마음을 책망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질병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학이 병을 다스리려면 수신(修身)의 의학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허준 선생이 "의자(醫者)는 반드시 유자(儒者)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제마 선생이 "참된 의원은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때만 치료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이치에서이다.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병을 고치려면 의사 스스로 환자에게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의원을 명의 중의 명의로 쳤고, 의사는 약이며 침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논어며 맹자를 읽어야 했던 것이다.

의사의 본래 역할에 대한 생각은 서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의사(Doctor)'라는 단어는 '가르친다'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은 그동안 의학이 아니라 도덕론이나 수행론쯤으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실제로 그러한'게 아니라 '그러해야 한다'거나 '그런 경지를 지향해야 한다'는 정도로 여겨진 것이다.

 


우리는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불치병에 걸렸다 기적처럼 나은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반뀌는 단계를 거친 다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든, 신에 대한 믿음이 동기가 되든 그들은 하루 아침에 딴 사람처럼 바뀐다.
그리고 그 방향 역시 한결같다.

이기적이고 참을성 없고 화 잘내고 의타적이고 냉소적이던 사람이 희생적이고 겸손하고 따뜻하고 너그러운 쪽으로, 즉 마이너스 파동에서 플러스 파동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혁명'은 우리 몸에 기록된 온갖 흔적과 상처를 쓰다듬고 다독여 마침내 기적을 일으킨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를 제포맷팅하는 것과 같다. 낡은 프로그램은 깨지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우리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고 온전한 의미의 창조일 것이다.

 

물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나를 이기기가 가장 힘들 듯이 모든 혁명 중에서
마음의 혁명이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혁명과 재생의 기회가 얼마나 자주 닥쳐오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몸은 21일 주기로 계속 바뀐다. 21일마다 낡은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들어서는 것이다. 또 뼈 세포는 6개월마다 바뀐다. 이렇듯 자주 우리는 낡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

우리몸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위대한 장이다.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맞이할 것인가는 윌의 선택에 달려있다.

 

출처 : [Daum우수카페]귀농사모
글쓴이 : 생약초 농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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